제사상에 오르는 알록달록한 사탕 그거
"그거 있잖아, 그거."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물건이지만 이름은 모른다. 그래서 '그거'나 '이거'로 부르며 답답해한다. 대부분의 경우 '그거'는 몰라도 상관없고 알아도 딱히 내세울 곳 없는, 보잘것없는 물건일 뿐이다. 하지만 모든 사물에는 이름과 의미와 쓸모가 있다. 흔하고 대단찮더라도 이름을 알면 달리 보인다.
제사상에 오르는 알록달록한 사탕 그거
옥춘당이다. 옥춘으로 줄여서 부르기도 한다. 요즘에는 설탕과 물엿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화려한 색상은 색소로 만든다. 옥춘당이 화려한 이유는 조상님이 오시는 길을 환하게 밝혀주는 등불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문세윤은 옥춘당을 저승캔디라고 불러 폭소를 유발했습니다.
제사를 치르는 날마다 알록달록한 옥춘이 맛있어 보여서 먹는데,
예상보다 단순한 맛이고 크기가 커서 먹기 힘들어 한입 먹고 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혹시 옥춘 좋아하시나요?
저승캔디
테이크아웃 컵에 씌우는 그거
단순한 발명품이지만, 1908년 종이컵을 발명한 이래 무려 80년이 지나고서야 등장했다. 제이 소런슨은 드라이브 스루에서 주문한 뜨거운 커피를 마시다가 무릎에 쏟고 말았다. 그는 뜨거운 종이컵을 안전하게 들고 마실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하다가 컵 슬리브를 발명했고, 2년뒤 자바 재킷이라는 제품으로 출시했다.
컵 슬리브는 일반적인 문제에 대해 훌륭하고 합리적인 해결책이고, 단순한 디자인과 기능성을 갖춘 발명품입니다.
컵 슬리브의 이름도 몰랐고, 단지 평범한 종이조각이라고 생각했는데 단순하지만, 그 역사는 전혀 단순하지 않은 제품임에 놀랐습니다.
주변의 평범한 물건들은 이질감 없이 자연스럽게 우리의 삶에 밀착되어 있고,
그 내면에는 사용자를 위한 배려와 단순함이 담겨있다는 걸 인지하고 나니 주변 사물을 보는 시선이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사내에서 UI Craft라는 이름의 애니메이션 스터디를 했는데, 스터디 이후에 UI애니메이션을 보는 눈이 생긴 것과 비슷한 느낌입니다. 어떤 대상에 관심을 갖고 이름을 알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새롭게 보이는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카페에서 빨대와 헷갈리는 그거
십스틱이다. 발음에 유의해야 한다. (sip stick) 십스틱이 젓개인지 빨대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양쪽의 주장을 모두 들어보자.
젓개파: 음료를 빨아 마시기 위한 용도로 구멍이 너무 작다.
빨대파: 이름부터가 '홀짝 거리며 마시는 상황'을 고려한 작명이다. 하지만 십스틱으로 뜨거운 음료를 먹어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이게 얼마나 위험한 행동인지.
이 책에서 제일 유쾌했던 부분입니다. 십스틱으로 언어유희를 하면서 젓개파와 빨대파의 주장을 비교하는 전개가 재밌었습니다. 이 부분에서 너무 웃겨서 책을 샀어요. 여러분은 젓개파인가요? 빨대파인가요?
열지 않고 마실 수 있는 테이크아웃 컵 뚜껑 그거
정확한 명칭은 커피 리드다. 하지만 컵 뚜껑이라고 해도 문제는 없다. 커피가 식지 않으면서도, 내용물이 밖으로 새지 않도록 하면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발명품이다. 커피 리드를 자세히 살펴보면 음료가 나오는 구멍 반대로 작은 구멍이 있다. 이는 공기 유입구다. 공기 유입구가 없으면 내부에 공기가 유입되지 않아 액체의 흐름이 방해를 받는다. 그럼 액체가 갑자기 쏟아질 수 있다.
커피리드: 벗기고, 조이고, 오므리고, 구멍난 것이라는 책을 펴낸 루이스 하프먼은 "커피 리드는 사소한 물건에 불과하지만 그 속엔 너무 많은 디자인적 노력과 경이와 미적 가치가 담겨 있다"고 강조합니다.
결혼식에서 신랑 가슴팍에 꽃 장식 그거
부토니에르는 남자의 정장이나 턱시도 왼쪽 깃인 라펠에 꽂는 꽃이다. 프랑스어로 웃옷의 단추구멍을 뜻한다.
라펠은 정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상석이라 국가 정상이 라펠에 단 배지는 무언의 메세지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예를들어 트럼프 대통령은 항상 성조기 배지를 달고 다닙니다. 또한 문재인 전 대통령은 세월호 노란 리본 배지를 달기도 했습니다.
결혼이 처음이다 보니 부토니에르를 라펠 홀이 아닌 가슴 주머니에 꽂은 신랑을 종종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가슴 주머니는 행커치프 자리므로 부토니에르는 라펠에 꽂아야 합니다. 꿀팁 +1 이네요.
어디까지 읽었는지 표시해두는 책 사이의 끈 그거
가름끈이다. 영어권에서는 bound bookmark라고 부른다. 여담으로 책갈피가 없어 페이지 모서리를 삼각형 모양으로 접어 표시하는 것을 영어권에서는 dog's ear라고 표현한다.
가름끈이 있는 책을 선호하시나요? 아니면 없어도 상관 없으신가요?
저는 가름끈이 있는 책을 선호합니다. 가끔 가름끈과 책날개 둘 다 없는 책이 있는데 그 책은 어디까지 읽었는지 표시하려면
강아지 귀를 만들 수 밖에 없어서 좀 아쉬워요. 저는 큰 강아지 귀를 만드는데 그럼 필연적으로 책이 많이 구겨지거든요.
강아지 키우세요? 저는 강아지 귀를 만들어요.
이 책에는 총 76가지의 그것들이 소개됩니다. 20~30가지는 별로 흥미가 없었지만 나머지는 꽤 재밌었습니다.
제가 위에 소개해드린 사물외에도 배달음식에서 쓰는 포장지 벗기는 칼, 귤에 붙어있는 흰색 껍질 등
존재는 알지만 이름을 모르는 것들이 소개되어 있으니 관심있으신 분들은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이름 없던 그것들의 이름을 불러보는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