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비는 왜 그랬을까 1

처세술은 야비하고 치졸한 것이라는 인식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처세술에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처세라는 단어에 거부감이 들었는데 그 이유는 치졸하고 약삭빠른 기회주의자를 연상시켰기 때문입니다. 본인이 떳떳하고 능력있는 사람이라면 처세 따위 몰라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스스로에게만 집중하면 스스로를 과신하고 오만해질 수 도 있습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벨라로폰은 키메라를 퇴치하고 영웅이 되었습니다. 그는 신에 대등하는 업적을 세웠으므로 본인도 신이 될 수 있다는 오만한 생각으로 페가수스를 타고 올림포스 산에 올라가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제우스는 파리를 보내 페가수스를 놀라게 해 벨라로폰을 땅으로 떨어뜨렸습니다. 그는 추락사하여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죠.

삼국지의 유비는 다른 영웅들에 비하면 능력이 뛰어나지 않습니다. 제갈과 방통에 비해 지략이 떨어지고, 관우와 장비보다 무력이 약합니다. 하지만 좋은 인재들을 등용하고 부하들의 신뢰를 얻어 결국 촉나라의 황제가 됩니다.

유비를 보면서 본인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주변 사람을 잘 두는 것도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과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처세술도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유비,관우,장비 셋중에 가장 능력이 부족한 유비가 리더가 된 이유

유비는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어머니와 함께 짚신과 돗자리를 만들며 생계를 꾸려나갔습니다. 유비의 집 마당에는 높이가 다섯 길이 넘는 뽕나무가 있었는데 그 모양새가 마치 황제가 타는 가마의 덮개처럼 보였습니다. 그 영향으로 유비는 어린 시절부터 황제가 되어 깃털 장식이 달린 가마를 타겠다는 꿈을 가졌습니다.

그가 24살일때 황건적의 난이 일어났습니다. 나라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에 유비는 한숨만 쉬었습니다. 이때 장비가 나타나 유비에게 호통을 쳤습니다. "왜 한숨을 쉬는건가!" 유비는 장비의 큰 덩치에 기가 죽었습니다.

사무엘 잭슨은 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남자 둘이 30분동안 한 공간에 있으면 자연스럽게 상하 관계가 형성됩니다." 무의식적으로 서로의 자원과 실력을 비교해 서열을 정합니다. 수컷 고릴라는 우위에 서기 위해 싸우고, 수컷 매미는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 목청이 찢어저라 웁니다. 사람도 이와 비슷합니다.

장비는 돈이 많았으며 유비보다 덩치가 크고 싸움도 잘했습니다. 객관적인 지표만 보면 장비가 리더가 되어야 정상인데 어떻게 유비가 리더가 된걸까요?

현저성 효과

유비는 한나라를 건국한 유방과 같은 핏줄입니다. 유비는 장비에게 자신은 본래 한실 종친이였다고 소개했습니다. 유비처럼 평민으로 전락한 한실 종친은 수도 없이 많았지만, 장비는 한실종친이라는 단어를 듣고 유비를 더 높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책 59p)

심리학에서는 이를 현저성 효과라고 합니다. 자신과 어떤 무리가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자원을 '내'가 먼저 나서서 관계성을 설정하면 그것을 독점하고 있다는 인지적 오류를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20세기 초, 홉킨스는 맥주 광고 문구를 제작했습니다. 고온으로 소독한 맥주병이라고 홍보하자 맥주 판매량은 단숨에 5위에서 1위로 뛰어올랐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다른 업체들도 모두 맥주병을 고온으로 소독했습니다. 이렇게 현저성 효과는 간단하면서 놀라운 효과를 냅니다.(53p) 유비는 1800년전에 현저성 효과를 사용한 것이죠.

대단해보이는 사람도 모두 불완전한 인간이다

유비, 관우, 장비는 황건적을 물리치며 명성을 쌓아가고 있었습니다. 삼형제는 공손찬의 수행원으로 반동탁연합군에 합류했습니다. 당시 동탁은 황제의 권력을 빼앗아 백성들을 약탈하고 학살하고 있었습니다.

조조, 공손찬, 원소같은 당대 영웅들은 동탁을 저지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하지만 연합군의 수장인 손견이 동탁의 장수인 화웅에 패하자 연합군의 사기는 저하되었습니다. 유비 삼형제는 위풍당당한 호걸들이 화웅 하나에 쩔쩔매는 꼴이 한심해 보였습니다.

결국 유비 삼형제 중 관우가 나서서 뜨거운 술이 식기 전에 화웅을 죽였습니다. 이 한번의 싸움으로 그들은 널리 이름을 알렸습니다. 이 사건이 중요한 이유는 유비는 제후들의 진면목을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영웅호걸이라는 자들이 모두 포부가 큰 건 아니고 지략이 뛰어난 것도 아니며 몇몇은 운 좋게 높은 자리를 차지한 것임을 알게 된 것이죠. 이 일을 계기로 유비는 자신감이 차올랐습니다.

인생은 항상 고통과 실패가 반복된다

유비는 24살부터 여정을 시작해 35살이 되는 해에 서주의 주인이 됩니다. 하지만 유비가 어렵사리 마련한 이 기틀은 하루 만에 산산조각이 납니다. 유비는 관우와 3만 군사를 이끌고 남양으로 출발했습니다. 이때 유비는 장비에게 서주의 수비를 맡겼습니다.

유비는 장비에게 술을 마시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장비는 술을 마시면서 술을 마시지 않는 부하 조표를 심하게 매질했습니다. 이에 화가 난 조표는 여포에게 사람을 보내 장비가 만취한 틈에 성을 빼앗으라고 부추겼습니다. 그 결과 장비는 여포에게 대적 한 번 제대로 못하고 서주를 빼앗겼습니다. 심지어 유비의 부인도 여포의 수중에 떨어졌습니다.

유비는 관우와 여포의 사이가 좋지 않았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남양으로 향할때 여포를 데리고 출정했어야 옳았습니다. 그래야 여포의 힘을 빌리면서 장비와의 충돌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죠.(191p) 유비는 본인의 결정을 후회하며 한탄 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유비의 성공은 밀렸고, 가까스로 성공하기 까지 12년이 더 걸렸습니다. 이 기간동안 유비는 삶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 숱한 고난을 겪습니다. 하지만 유비는 고통이 올때마다 황제가 되겠다는 꿈을 마음속에 간직하며 고통을 이겨냅니다.

삶은 고통의 연속이다

니체는 삶은 고통이라고 말했습니다. 토스의 이승건 대표는 토스를 만들기 전까지 8번의 실패를 겪었고 에디슨은 전구를 만들기 전 10,000번의 실패를 했습니다. 유비도 약 25년동안 수 많은 고난을 겪고 결국 황제가 됩니다.

유비가 꿈을 이뤄 황제가 된 이후에도 고통에서 벗어났을까요? 유비는 황제가 된 이후에도 조조, 손권과 끊임 없이 전쟁을 했으며, 아우들을 잃는 슬픔도 겪습니다.

이 부분을 읽으며 삶은 과연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유비의 여정에는 항상 고통이 있었고, 황제가 되고 고난을 겪으며 죽은 그를 보며 인생이 덧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삶은 다양한 측면으로 바라볼 수 있지만 한 가지 확실한건 고통의 연속이라는 것입니다. 당신은 삶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답이 없는 질문이지만 한번쯤 생각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역사와 처세술

역사는 나보다 먼저 길을 걸었던 선조들의 발자취라는 말이 있습니다. 과거 인물들의 행동과 판단을 현재 우리의 삶에 적용할 수 있죠. 이래서 사람들이 삼국지로 인생을 공부한다고 하는거구나 싶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숱한 고난을 겪고, 중요한 결정을 하게 됩니다. 이때 과거 인물들의 판단을 참고하면 조금 더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픽사 스토리펠링이라는 책을 읽고 이야기의 중요성을 느꼈었습니다. 그래서 이야기의 근본인 삼국지에 관심이 생겼었는데 결국 이 책까지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호기심이 연쇄 반응처럼 폭발하고 그 결과로 새로운 깨달음이 생기는 이 현상이 참 재밌고 즐겁습니다.